나를 변화시키는 것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험기간

하다_Y 2022. 2. 21. 04:22

지금은 새벽 2시 30분
괜히 마음이 말랑말랑 해져서 오랜만에 추억이 담긴 글을 써보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인생 첫 중간고사!!!!!!!!!!!
날씨가 꽤 쌀쌀했던 어느 날이었다.
열심히 시험을 치고 나서 또 다른 시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시험 1일째가 되던 날이다.
암기과목이 쌓여있었고 다음날이 시험이라서 초1 시절부터 친했던 유리(가명)와 함께 우리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무슨 생각으로 친구와 공부할 생각을 한지 모르겠지만 그냥 신났다.

밤샘을 다짐한 우리는 편의점에 가서 어딘가 있어 보이는 하얀색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고르고 말했다.

이거 괜찮을 거 같은데? 하나로 나눠먹자 ㅎㅎ

시험 기간엔 밤을 새우고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다는 생각을 하니 내가 중학생이라는 게 실감이 나면서 조금 멋져 보였고 밤샘 공부는 껌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는 내 최애 핫바가 2+1을 하고 있었다.
입맛도 비슷한 우리는 치즈콕콕을 골라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휘두르며 집으로 갔다.
참 운도 좋았던 이상한 하루였다.

조심스럽게 몬스터를 컵에 1:1로 나눠서 한 모금을 마셨다.
찌르르한 탄산이 목을 탁 쏘았고 어딘가 애매모호한 포카리스웨트? 파워에이드? 맛이어서 멋쩍은 미소를 짓고 나중에 마시자며 냉장고에 고이 넣어두었다.
(사실 여전히 몬스터 하얀색의 맛은 모르겠다.)

감히 추천하자면 검정색이 최고인 거 같다.
포도맛 아이스크림은 폴라포, 포도맛 탄산음료는 웰치스 밖에 모르는 초딩입맛을 가진 나에겐 딱이었다.
적절한 탄산과 포도향.
완벽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사실 수다가 반이었던걸로 기억한다. ㅎㅎ
새벽 2시쯤 너무 졸려서 우리는 딱 30분만 자기로 다짐했다.
왠지 편하면 꿀잠을 잘 거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에 매트 깔린 거실 바닥에 헬로키티 핑크색 이불 하나로 잠을 자기로 했다.

따르르를ㄹㄹㅇ
따르르르르르릉ㅇ..................

중간에 유리가 깼다가 다시 알람 맞추고 잤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금붕어 기억력이라서 생각이 잘 안난다.
아무튼 꿀잠을 잤다.
불면증 없이 잘 잤던 신기한 날이었다.

눈 떠보니 6시 30분.
우리의 계획은 완벽하게 망했고 아빠가 사주신 삼각김밥을 먹으며 "나 시험 망했다..."를 반복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한 글자를 더 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ㅎ

이상하게 모든 게 좋았던 날은 시험을 치고 나선 운수 좋은 날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잊지 못할 한편의 추억으로 남았고 우리는 이 기억으로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난 즐거웠기 때문이다.
____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어제 유리가 보내준 카톡 때문이었다.

아는 형님에 조정석 배우님이 나오신 영상이었고 그 내용은 우리랑 똑같았다.
시험 전날 친구 집에서 놀고(?) 공부한 것.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일을 회상하니 좀 웃겼다.ㅋㅋㅋㅋ

시험 점수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좀 망했다는 것만? ㅋㅋㅋ
돌이켜보면 시험 점수보다 더 값진 걸 얻었던 날이다.

몇 달이 지나서 우리는 미성숙함에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성장했고, 어딘가 이상했던 날 덕분에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끈끈한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괜히 민망하고 웃기기도 해서 짤 하나를 보냈다.

내 감정은 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히히...

머쓱하지만 잔잔하게 신나는 듯한 이 표현이 좋다.

____

요즘 따라 어딘가 몽글몽글한 이상한 감정이 자주 든다.

행복한 것도, 우울한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
누군가 한마디 던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지만 좋아하는 예능이나 친구를 만나면 배가 아플 정도로 웃는다.
우울한 감정이 마음의 감기라고 했지만 나는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을 안 좋아한다.
마음을 강하게 가지면, 마음의 면역성을 키우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 나약해 보이는 표현이 어딘가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만든다.
정확하게 말하면 뇌의 감기가 맞다. 감기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가장 적합한 단어라는 생각은 든다.
뇌에서 여러 신경 물질의 혼란이 생겨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고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재밌는 건 뇌는 복잡한데 단순하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하면 생각을 감정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누군가 나에게 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뇌는 감정을 분노로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행복해지라는 거다.
모호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말일 수도 있다.
영어에서도 행복은 추상명사로 분류된다.
이렇게 추상적인 걸 느낀다는 게 막막할 수도 있지만 행복은 참 단순하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서 알게 되었다.
난 지금까지 모든 행복을 크기로 표현했다.
'오늘 내가 도서관에 간 건 여행을 간 것보단 덜 행복해' 같은 무의식적 생각들이 매번 머릿속에 있었다.
행복을 비교하며 지냈다.

'내가 책이 아닌 넷플릭스를 본건 전혀 내 인생에 도움되지 못했어.'
이렇게 나를 발전시키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땐 그 당시의 행복은 잊어버리고 죄책감만 가지고 살았다.
이걸 반추라고 하는데 반추과거의 부정적 사건이나 일을 반복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으로, 과거의 잘못된 일을 지속적으로 회고하면서 자신의 잘못이나 능력 부족을 자책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내가 실수하거나 부끄러웠던 경험을 계속 떠올리면서 이불킥을 찬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불킥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트라우마를 떠올리면서 반추사고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자책을 계속하면 당연히 행복이라는 감정과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행복을 빈도가 아닌 크기에 초점을 뒀던 것 같다.
뭔가 결정적인 사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 같다는 생각에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좇았던 것이다.
이걸 지속하면 번아웃, 슬럼프라는 녀석들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굳이 회상 안 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글로 적은 이유는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사소하지만 인상 깊었던 삶 속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행복한 추억들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잠시 미소 한번 지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
정말 사소한 일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분 좋아지게 했다면 당신의 하루는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알고리즘에 뜬 음악 플레이리스트, 재미있는 영상, 친구의 카톡 하나가 주는 행복을 절대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도저히 행복하지 않은 날에는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https://youtu.be/eTeRPMU5l2Y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뇌는 단순해서 생각을 감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세뇌를 당하는 거 같은 이 노래가 은근 도움이 된다 ㅎㅎ

따스한 봄이 찾아오고 있는 2월 말,
당신의 오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